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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대한 의문점

David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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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20060516

나는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당연히 기독교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아마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분명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지만, 이해할 수 없고 궁금한 점이 많이 있다.

언제인지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기독교에 대해 어떤 의문을 품게 되었고, 그러다가 몇년전에 이문열 씨의 <사람의 아들>이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 소설을 읽고 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본격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의문은 인간의 "자유 의지" 및 "죄의 존재"와 "책임 소재"에 관한 것이다.

그 소설에는, 주인공 아하스 페르츠가 랍비인 아버지에게 "교사자"와 "하수인" 중 누가 더 큰 죄인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는 교사자가 더 큰 죄인이라고 대답했고, 뒤이어 아하스 페르츠는 죄인이 죄를 짓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정확한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선택을 하기 때문에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오류가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할 지 이미 알고 계실 것이다. 이때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다시말해 미리 정해져 있다는 말과 같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인간이 무언가 선택을 하려고 할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분명 인간이 어떤 선택할지 알고 계실텐데, 만약 인간이 하나님이 미리 알고계시는 것과 다른 선택을 한다면 하나님이 틀린게 되므로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이 미리 알고 계신 바로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다시말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인간이 악을 행하려고 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것을 미리 알고 계시고 막을 수 있으면서 막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의도이다. 단순히 말해서, 못막는 것이 아니라 막을 수 있는데도 안막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그렇게 되길 원한다는 뜻이 된다. 결국 나는, 인간은 자신이 무언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어떤 사소한 선택도 미리 정해진 계획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전혀 없고 하나님의 계획대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를 미리 정해놓으셨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 그러나 그 선택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 없이 그저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이며, 선택받지 못한 악인들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악인은 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지옥에 가야할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Shakespeare의 비극인 Hamlet을 예로 들어보자. Hamlet의 숙부 Claudius가 Hamlet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다. 어떤 배우가 극중의 Claudius 역을 맡아 Hamlet의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 즉 악행을 저지르는 장면을 연기한다고 가정하자. 과연 그 배우에게 죄가 있을까? 그는 단지 작가의 계획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악인의 역할이 주어졌고, 그래서 악행을 연기할 뿐이다. 그 배우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다.

이번에는 Hamlet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흔히 Hamlet을 우유부단함의 대명사로 생각한다. 그의 우유부단함이 드러나는 장면 중 하나가, 기도하고 있는 무방비상태의 Claudius를 죽여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부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만약 Hamlet이 그때 Claudius를 죽였다면 이후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Hamlet에게 만약이란 없다. Hamlet은 기도하는 Claudius를 죽이지 않기로 결정하는데, 그것은 그가 고민하여 선택한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작가인 Shakespeare에 의해 정해져 있는 행동을 한 것 뿐이다. 그의 선택처럼 보일뿐, 사실은 그의 선택이 아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Shakespeare와 Hamlet 또는 Claudius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읽은 데이빗 흄(David Hume)의 인용문에서 “하나님은 선하시거나(OR) 전능하실 순 있지만, 선하시고(AND) 전능하실 순 없다. 이 세상에 죄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선하시지만 능력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남겨두시는 것이거나, 전능하시지만 선하지 않으셔서 없애지 않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동시에 전능하시다면 이 세상의 죄는 존재할 수 없어야 한다.”라는 요지의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이 또한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교회에 다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에 대해 그 어떠한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게 하시고, 가슴 아프게도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죽도록 하셨을까?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그렇게 하셨다면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하나님은 죄를 필요로 하신 것일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흑백이 대조를 이루면 흰색이 더욱 희게 보이듯,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기 위해 죄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죄의 존재 없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그리 길지 않은 내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깨달아 알고 있다. 그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성경 속에 자주 등장하는 여러 믿기 힘든 기적들도, 비기독교인들에게는 허황된 듯 보일 지 모르지만, 나는 믿는다. 그러나 이 문제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확실히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반기독교적인 의문을 품는 것은 결코 기독교에 대해 흠집을 내고 배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달아 더 잘 믿기 위해서이다. 물론 전에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한 적이 있다. 내가 들은 대답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고 넘어가라는 무책임한 대답뿐이었다. 나는 그런 얼버무리는 듯한 대답이 아닌, 비기독교인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대답이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