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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세

David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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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20170410

돈이든 권력이든, 뭔가 "힘"을 가진 인간은 아무래도 겸손함과 자제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예를 들어보자. 내 직업은 영업사원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소매 영업은 아니고, 거래처의 "구매 담당자"를 상대하는 B2B 영업사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거래처 구매 담당자는 "갑"이고, 나는 "을"이다. 그런데, 장기간 구매 담당자로 일해온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심각한 정신적 결함을 드러낸다. 본인이 항상 옳다고 믿고, 상대방은 나보다 열등한 존재이며, 내 의사에 따라 뭐든지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구매 담당자가 잘못을 해도 문제를 제기하는 "을"은 거의 없기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갑질"에 익숙해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인성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전혀 없는 구매 담당자는 본 적이 없다.)

서론이 길었는데, 사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재벌 2세(또는 3세)들에 대한 것이다. 조그만 중소기업의 일개 구매 담당자 조차도 자신의 권한에 도취되어 추태를 보이는데, 국가 경제를 주무르는 거대 재벌가의 2세들은 과연 어떨까? 아쉽게도 내가 아는 지인 중에 재벌 2세는 없다. 따라서, 그들에 대해 직접 보고 들어 아는 바는 없다. 하지만, 예로 든 거래처 구매 담당자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지위와 엄청난 부를 가지고 살아온 그들의 모습은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할 것 같다.

젊을 때 상당한 고생도 했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도 했고 그래서 결국 현재의 위치에 오른 창업주들과 달리, 재벌 2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다. 단순히 돈만 많은 것이 아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삶을 살게 된다. (자기가 모시는 재벌 총수의 자녀에게 싫은 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나이가 차면 아버지의 재산과 직책을 물려받고 후계자가 된다. 그들의 삶에는 정상적인 인성 교육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인성 교육은 단순히 말로 설명하고 책을 읽도록 하는 것으로만 성취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 행동의 옳고 그름에 따라 칭찬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하면서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서 정상적인 인성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접하는 재벌 2세들의 일탈 행동은, 이런 성장 과정을 고려할 때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커온 그들을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법을 어기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본인의 선택과 관계 없이 가지게 된 인성적인 결함에 대해서 도덕적인 비난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좀 애매한 면이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재벌 총수라면 자식을 어떻게 교육시킬까? 나에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내 자식을 안하무인의 망나니로 키우고 싶지는 않은데, 어떻게 하면 겸손함과 자제력을 갖춘 정상적인 인성을 형성시켜 줄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보통 사람들도 자식 교육 측면에서 한번쯤 고민해볼 만한 질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