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 내로남불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보수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고 당연히 5월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예상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다. 비록 대선 당시에는 내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와 관계 없이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의 성공은 곧 대한민국의 성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부의 모습을 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다. 비록 한달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동안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문제점은 "포퓰리즘"과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포퓰리즘의 정의는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선택지와 실제 국가에 도움이 되는 선택지가 상충할 때, 국익 보다는 인기를 선택하는 정치 행태"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철저하게 인기를 우선시 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대표적인 것이 위안부 합의 번복 논란이다. 일본이 저지른 잘못은 너무나 명백하고, 나 역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에 대한 사과나 보상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국제적인 외교 관계를 오로지 우리 의사대로만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다. 일본은 일본의 입장이 있고, 비록 자신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수많은 강대국들 틈에 끼어 있는 약소국에 불과하다. 아쉽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것이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다. 국익을 위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 및 협력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내린 "모든"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이 위안부 합의가 대중의 인기에 반하는 사안이라는 점이다. 대중들은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이다. (대중들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대중들에 속한 한 사람이다. 그저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성을 접어두고 오직 감성적으로만 보면, "국익을 위한 적절한 타협"은 그저 "민족의 자존심을 포기한 굴욕적인 합의"로 보일 뿐이다. 대중들의 귀에는 "(상대국인 일본과의 미래 관계나 국제적인 합의에 대한 이행 의무 따위는 모르겠고)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더 확실한 사과와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이 듣기에 더 좋을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국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이에 영합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 번복 논란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북한과의 관계 설정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과 관련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철저히 "대중적 인기"를 우선시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물론, 국익과 인기가 항상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국익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얼마든지 감성적인 이미지 정치를 통해 인기를 추구해도 상관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국익과 인기가 상충하는 상황에서는, 과감히 국익을 선택할 수 있는 지도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행태에 실소를 금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현재의 여당인 민주당은 야당이었던 시절에 매 인사청문회 마다 온갖 (대부분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의혹을 폭로하며 후보자를 공격했고, 사소한 흠결이라도 발견되면 이를 트집 잡아 그 후보자를 낙마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었다. 물론, 정말로 부적절한 인물이 후보자로 지명된 경우에는 이를 비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고위 공직자 인사 5대 원칙"을 내세우며 자신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진영이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후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진보 진영이 비교적 도덕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보수 진영에 비해 비리를 저지를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라는 내 생각이 역시나 맞아떨어진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들 중에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제시한 5대 원칙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전무하다는 점은 정말 한편의 블랙코미디다.
개인적으로는, 사소한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능력이 출중하다면 충분히 등용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들과 관련된 의혹 및 흠결들이 그들을 낙마시킬 만큼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핑계로 사과와 반성 없이 어물쩍 임명을 강행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다. 과거 동일한 문제가 있던 후보자들을 수없이 공격했고, 낙마시켰고, (결국은 착각이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인사 5대 원칙을 내걸었던 당사자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과 현 집권 여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지명한 후보자들에게서 이처럼 많은 문제가 발견됐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지키지도 못할 5대 원칙을 폐기하고 자신들의 오판에 대해 사과하고 야당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5대 원칙을 고수하고 그 원칙에 따라 문제가 있는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이보다 더 "내로남불"이라는 말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또 있을까?
집권 초기의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높은 지지도에 도취되어, 야당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오직 자기만 옳다는 독선에 빠진 모습은 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전직 대통령의 모습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명백한 잘못 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협치를 강조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내외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산적해있는지 모를 리 없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시행착오를 감수할 여유가 없다. 감성팔이는 연예인들이 할 일이다. 정치인은 정치를 해야 한다. 하물며, 정치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과 대통령 모두의 성공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의 변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