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나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한국은 독특한 나이 계산법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만 나이"를 사용하고, 한국에서조차 공식 문서 등에는 동일한 방식을 사용하지만,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나이는 항상 그보다 1~2살 가량 많게 계산한다. (생일이 지났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즉, 한국의 나이는 "올해가 그 사람이 태어나서 몇 번째 맞는 해인가?"를 의미하고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는, 태어난 바로 다음날 2살이 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 사람이 태어난 지 몇 년이 되었는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세계에서 이런 나이 계산 방식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물론, 내가 전문적인 조사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과 동일한 방식을 사용하는 나라가 또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방식을 쓰는 나라가 극히 드물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면, 왜 우리만 이런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게 된 것일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는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 탓이 아닌가 한다. 요즘 들어 그런 경향이 많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여전히 한국 문화에서는 위계질서가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한국어에서는 그러한 위계질서에 따라 사용하는 말까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위계질서를 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바로 나이다. 물론, 회사에서는 직급이 중요하고, 군대에서는 계급이 중요하고, 거래 관계에서는 누가 "갑"인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2차적인 조건이 없을 경우 (쉽게 말해, 업무적/개인적으로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경우) 위계질서를 정하는 것은 결국 나이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만 나이"를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만 나이"를 사용한다는 것은, 바꿔 말해 각각의 개인이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시점이 모두 달라진다는 의미다. 어제는 동갑이었던 사람이, 오늘 생일이 지나고, 내일은 형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어제는 동생이었던 사람이 내일은 동갑이 될 수도 있다. 즉, 안정적인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시기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는,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한국인에게 여간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 아니다. 반면에, 현재의 한국식 나이 계산법을 사용하면 모든 사람이 새해 첫날 동시에 나이를 먹는다.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도 한번 정해지면 평생 변하지 않는다. 반말을 썼다가 존댓말을 썼다가 헷갈릴 이유도 없다. 한국 문화 기준으로는 정말 편리한 방식이다.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그리고, 최소한 한국에서는 한국식 나이가 더 편할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화된 현대 사회에서 한국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국인과 대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한국식 나이를 말해버려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뭔가 중요한 문서 작성 중 나이를 적을 때 실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나이를 2가지로 계산해야 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한국인들도 그런 불편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이를 물어볼 때 흔히 "몇 살인가?"를 묻지 않고 "몇 년생인가?"를 묻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불편함을 굳이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다. 이제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만 나이"를 사용하도록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 예전에 보행 방향이 "좌측보행"에서 "우측보행"으로 변경되었을 당시, 초기에는 다소 혼동스러웠지만 이제 전혀 불편하지 않다. 나이 계산 방식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개인이나 민간 단체가 나라 전체를 바꾸기는 어려울 테니, 정부 주도로 뭔가 캠페인이라도 실시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