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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견제

David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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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20180405

예전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수준(도저히 적절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이렇게 표현했다. 문화 수준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시민 의식이라고 말해도 얼추 맞을 것 같다. 어쨌든, 사회 전반적인 의식 수준에 대해 말하고 싶다.)이 많이 향상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은, 소위 말하는 "후진국"들에 비하면, 분명 잘 정돈되고 질서가 잡힌 모습이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들에 비하면 근본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선진국 시민들은 "내가 남에게 방해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을 극도로 싫어한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남이 나에게 방해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일"을 용납하지 못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처럼 정 반대의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이다. 즉, 선진국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인해 질서가 잡히지만, 한국에서는 서로에 대한 견제와 그로 인한 균형을 통해 질서가 잡히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운전을 할 때, 여타 선진국에서는 "저 차 운전자도 나름 바쁜 일이 있을 텐데, 비교적 시간이 많은 내가 양보를 해야겠구나"라는 느낌이라면, 우리 나라는 "맘 같아서는 다 제끼고 내가 먼저 가고 싶지만, 어차피 저 차 운전자도 똑같은 생각일 테고, 서로 먼저 가려다가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프니 속 편하게 양보를 해야겠구나" 정도의 느낌이랄까… 결과적으로, 서로 양보를 하고 질서가 지켜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의 경우 한가지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의 균형과 질서는 "배려"가 아니라 "견제"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충분히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 균형과 질서가 쉽게 깨져버리고 서로 추한 모습을 노출시키게 된다. (흔히 발생하는 "갑질" 사건들이 좋은 예가 아닐까 한다.) 잠재적인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다.

물론, 선진국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성인군자인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라고 해서 모두가 소인배인 것은 아니다. 세상 어디에서든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는, 내가 느낀 바가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비슷하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 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