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기준
우리는 "보편적 기준"이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분명 보편적 기준이 중요하게 작용하며, 그와 관련해 특별히 혼동스러운 부분도 많지 않다. 그러나, 취향이나 개성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이 보편적 기준이라는 말이 상당히 모호하다.
가장 쉬운 예로, 미적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들에게 김태희와 전지현 중 누가 더 예쁘냐고 물어보면, 김태희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고 전지현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비슷한 비율로 나눠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당연히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답변이 달라진다. 여기에서 "보편적 기준으로 봤을 때 어느 한 쪽이 더 낫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김태희와 오나미 중 누가 더 예쁘냐고 물어본다면, 절대 다수가 김태희라고 답할 것이다. (부정적인 예로 특정인을 지칭해서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본인 스스로 그런 이미지를 이용해 활동하시는 분이니까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즉, 여기에서는 분명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는 보편적 기준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결국, 상황에 따라 개인적 취향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고, 보편적 기준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 다만, 적용 기준을 변화시키는 그 "상황"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결론도 없이 무의미해 보이는 글을 적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오묘함이랄까? 동물들은 특정 상황에서 대부분 비슷한 행동 양식을 보인다.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 양식은 개인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고 또 뭔가 공통적인 경향도 보인다. 다양성과 보편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