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역행
인간이 어떤 대상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는, 당연히 머리 속에서 사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때 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은, 먼저 현상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삼아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와 반대의 과정을 거쳐 판단을 내린다. 즉,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그에 맞는 근거를 갖다 붙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100프로 잘한 일만 있거나 100프로 못한 일만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물건 또는 의견에 100프로 장점이나 100프로 단점만 존재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거의 언제나 모든 대상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되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미리 결론을 정해 놓으면, 그에 부합하는 근거들만 취사선택해서 하나의 완결된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그렇게 만들어진 논리는 최소한 외관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고의 과정을 역행하는 오류를 범했음에도) 자신의 착각 속에서는 자기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상당히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고 믿게 된다.
이런 식으로 사고를 하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점이다. 일단,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좋든 싫든 자기만의 기준을 따르게 되고, 여러 다른 대상에 대해서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이라면, 여러 사안에 대해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면에 사고의 과정을 역행하는 사람은 임의로 미리 정해 놓은 결론에 따라 뒤늦게 논리를 만들기 때문에 기준이 그때 그때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개별적인 논리는 말이 될지 몰라도, 범위를 확대하면 여러 대상에 대한 논리들 사이에 일관성이 없고 상충하는 일이 생긴다. 즉, 이 사안에 대해서는 원칙을 강조하더니, 저 사안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불명확한 기준으로 인한 논리적 결함은 반드시 내로남불로 귀결된다. 이런 현상은 특히 정치권에서 많이 나타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건 여당/ 야당/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너무나 흔히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냥 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을 따르기만 하면 전혀 문제가 없을 텐데, 누군가에게는 그 단순한 일조차 어려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