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영웅전설
<은하영웅전설> - 다나카 요시키
나는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을 정말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자율학습 시간에 미친 듯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외전까지 포함하면 십여권에 이를 정도로 길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오히려 짧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순수하게 재미로만 따지면 내가 평생 동안 읽은 책 중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당시에는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해 상당히 철학적인 고찰을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중우정치로 망가진 민주주의와 천재가 이끄는 군주제의 대결이 이야기의 기본 흐름이었는데, 이 책 내용만 보면 군주제 쪽이 나아 보였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지식과 경험이 늘어난 시점에 돌아보니, 상당히 허점이 많은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보기 드문 최악의 인물로 설정하고, 반대로 제국의 황제는 하늘이 내린 천재로 설정함으로써, 애초에 공정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즉, 당연히 군주제 쪽이 좋아 보일 수 밖에 없도록 의도된 소설이었다. (작가가 일본인이라서 그런 걸까?)
물론 현실에서도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나라를 망치기도 하고 유능한 왕 또는 독재자가 나라를 부흥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민주주의에는 "선거"라는 최소한의 필터링이 존재하지만 왕 또는 독재자에게는 그런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함량 미달의 지도자가 정권을 잡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민주주의에는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 (탄핵, 임기 제한 등) 결과적으로 지도자가 국민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반면에, 왕 또는 독재자가 함량 미달이라면, 그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 (혁명, 쿠데타 등)
즉, 민주주의가 더 낫다는 것이 명확하다. 인류가 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발전해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은하영웅전설>은 어디까지나 오락소설일 뿐이다. 그냥 재미로 읽고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