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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Shin

회개가 허락되지 않는 선택

Tags: +human, +죽음, @선택

2026-01-21

Mourn

나는 기독교인이다.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매우 큰 죄악으로 본다. 그리고 (생명을 버리는 행위이므로) 이후에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자살은 곧 지옥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살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1. 타이타닉호를 생각해 보자. 배가 침몰하는 중에 구명보트가 제한적인 상황이다. 어떤 사람이 운이 좋게 구명보트에 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배와 함께 침몰한다. 물론, 이타적인 희생의 모습이지만, 어쨌든 본인이 죽음을 선택했다.

  2. 2차대전 중 독일군이 점령한 도시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대원이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생포 되기 직전이다. 그는 항상 휴대하던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포로가 되면 어차피 죽은 목숨일 뿐만 아니라,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해 동료들에 대한 정보를 누설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고통을 주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3. 2번과 동일한 상황이다. 다만, 생포 위기에 처한 사람은 혼자서 활동하기 때문에, 포로가 되더라도 딱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다. 다만, 끔찍한 고문을 받다가 처형되는 것 보다는 지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어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4. 말기 암 환자가 있다. 어차피 치료 가능성은 없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한다.

4가지 예 모두 표면적으로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지만, 실제로 죽음을 바랬던 것은 아니다. 1번을 제외하면 어차피 임박한 죽음이 확정된 상태에서 타인 또는 자신이 겪을 고통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 뿐이다. 1번은 예외적으로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타인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결정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자살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1번과 2번을 자살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안타깝긴 하지만) 3번과 4번은 자살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다만, 이는 논리적이라기 보다는 심정적인 판단일 뿐이다. 1~2번과 3~4번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1~2번은 타인을 위한 선택이고 3~4번은 자신을 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4번의 환자가 가족들의 병원비 부담, 더 나아가 그로 인한 가정 파탄을 피하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했다면 (애초에 넉넉한 집안이 아니라면 중증 질환 의료비는 전체 가족의 인생을 충분히 망가뜨릴 수 있다) 자살이 아닌 것이 되나? 3번의 경우 사실상 죽음이 확정된 상태에서 자신에게 가해질 의미없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데, 애초에 왜 타인을 위해 죽는 것은 이해해 주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죽는 것은 이해해 주지 못하나? 정말 어려운 문제다.

무겁고 민감한 주제지만 너무 궁금하다. 아마도 명확한 정답을 얻지는 못할 것 같다.